2012년 6월 19일 화요일

영화 <아바타>의 영웅 서사 구조 속 소수자1) 재현 방식2)


서강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백목련
 
 

1. 서론
 

   영화 <아바타>(2009)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작품으로 미래 지구 자원의 고갈을 해결하기 위해 행성 판도라에서 일어나는 인류와 나비족의 대립을 공상과학과 서부극 장르를 차용하여 그려냈다.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과 3차원 입체기술로 개봉 이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으며 국내에서만 1,318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흥행했다. 이 글에서는 <아바타>가 보여준 집약적인 과학기술의 매력뿐만 아니라 그 서사 구조 역시 관객을 몰입시키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보고3) 영웅 서사에서 서부극을 차용, 변주한 이항 대립 구조와 남성 영웅과 여성 조력자가 등장하는 의미에 대해 분석해 내고자 한다.

   먼저 <아바타>에서 서부극의 요소를 짚어보고 이 장르를 기반으로 이항 대립 구조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볼 것이다. 인류와의 대립 구조 속에서 대안적이며 생태중심적인 가치를 지닌 공간인 판도라와 이를 내면화한 나비족이 제3세계, 식민지, 혹은 원시부족의 재현이라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설정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대안적이며 생태중심적 가치를 제안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식민지 이미지’를 그대로 끌어옴으로써 오히려 관객에게 거리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문명’과 ‘미개’라는 조작적이며 대립적인 이미지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다음으로 일반적인 영웅 서사에서 여성이 영웅적 여정의 목표이자 보상으로서 제시되는 것과 달리 두 명의 뛰어난 여성인 그레이스 박사와 네이티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아바타>는 다른 영웅 서사와 차별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남성 주인공이 영웅으로 변모하는 순간 영웅적 여정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로 전환되는 것에 그치고 있으며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볼 것이다.
 
1) 이 글에서 언급하는 ‘소수자’는 선주민(先住民; 일반적으로 ‘원주민(原住民)’으로 언급하나 이 단어가 가진 오리엔탈리즘적 의미를 탈피하고자 선주민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과 여성이다.
2) 2012년 1학기 연세대학교 문화학협동과정 문화연구입문 기말과제로 제출한 페이퍼이며 선생님과 수강생들의 조언을 받아 수정, 보완하였다.
3) <아바타> 못지않은 과학기술을 사용한 영화 <트론>(2010)은 흥행에 참패했으며 <아바타> 개봉 이후 다양한 패러디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서사 구조 등이 관객과 어떤 작용을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서부극을 차용, 변주한 이항 대립 구조
 

   다수의 관객들은 <아바타>가 공상과학 영화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점에서 서부극 장르를 차용, 변주한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1990)과 같은 구조를 지닌다. 첫째, 선과 악,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대립이 드러난다, 둘째, 선주민이 고유한 언어를 가졌다, 셋째, 자연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넷째, 주인공과 선주민이 사랑에 빠진다, 다섯째, 주인공이 선주민과 대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서성식, 100-113)

   그래서 <아바타>에서는 인류를 악, 식민자, 이익집단, 과학기술문명 등의 서양 기독교 이미지로, 나비족을 선, 피식민자, 공동체, 원시문명 등의 동양(제3세계) 토착신앙 이미지로 대비시킨다.(김희경, 477) 이항 대립 구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류를 다시 군대-기업 집단 대 과학자 집단의 대립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대립 구조 내 다시 대립 구조를 만들어냄으로써 1차적인 선악 구도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이 특정 문제 상황 내 현실과 비슷하며 복잡한 맥락을 지닌 관계를 인지하게 되며 영화에 한 층 더 빠져들게 했던 것이다.
 

   1) 인류4) 대 나비족
 
   인류는 미래 지구의 자원고갈을 해결하고자 행성 판도라에 정착해 있다. 이들은 우주선 내에서 생활하며 그 안은 과학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각종 장비와 시설, 무기를 갖추고 있으며 제약된 공간이지만 매우 효율적인 공간 사용을 보여준다. 인류가 우주선에서 생활하는 장면은 주로 근거리에서 촬영되며 이는 우주선 내부이기 때문에 시설이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세련된 과학 기술의 사용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류는 제복을 입은 군인으로 등장하며 신속한 명령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언옵타늄5)을 채굴하는 것이 주 목적이며 이를 위해 판도라나 나비족에 대한 파괴와 공격을 서슴지 않으며 이성적, 합리적 집단으로 비추어진다. 이들은 다시 군대-기업 집단과 과학자 집단으로 양분된다.
   반면에 나비족은 판도라의 선주민이며 홈트리(Home Tree)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나비족의 세계인 판도라는 원시림 혹은 밀림을 연상케 하며 인류를 위협하는 기이한 형상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여기서는 전체를 조망하는 장면이 많은데 주로 넓게 펼쳐진 자연 경관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며 나비족 역시 넓은 공간에서 이를 용도에 따라 분리하지 않고 성기게 사용하여 집단적으로 흩어져 지내기 때문이다. 또한 원시부족의 복식을 그대로 차용함으로서 제3세계 식민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들은 자연 즉, 대모신인 아이와와의 교감을 중요시하며 생명체를 이용하지만 전유하지 않는다.
 
4) 군인, 기업가, 과학자의 선별된 집단이지만 편의상 ‘인류’라고 칭한다.
5) 판도라에 매장된 지하광물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수적인 자원이다.


   2) 군대-기업 집단 대 과학자 집단
 
   또 다른 대립의 축은 군대-기업 집단 대 과학자 집단으로 앞선 대립 구도에서 인류가 군대-기업과 일치한다. 효율적인 언옵타늄의 채취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며 우주선 내 자원 조달과 명령 체계의 상위에 있다. 판도라와 나비족을 대상화하지 않고 고유의 생활체계를 존중하려는 과학자 집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주로 기지의 보안담당관인 퀴리치와 행정관 셀프리지로 대표된다.

   반면에 과학자 집단은 기존에 재현되던 과학자의 이미지와 달리 판도라 행성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레이스 박사를 중심으로 판도라의 네트워크와 체제에 대해 큰 호기심과 열정을 보이며 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만 쉽게 자원화, 대상화하려는 군대-기업 집단과 계속해서 갈등을 겪는다.

 
   영화에서는 주로 첫 번째 대립 구조인 인류와 나비족을 중심으로 서사 구조가 전개된다. 이들의 대립이 심화될수록 두 번째 대립 구조에서 과학자 집단은 나비족으로 흡수되어 하나의 대립 구조로 변화한다. 이러한 대립 구조 내에서 관객들은 자신과 동질적인 인류보다는 거주지를 침략당한 나비족에 공감하며 과학자 집단을 지지하는 양상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나비족이 보여주는 대안적이며 생태친화적인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며 이를 보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는 퀴리치나 셀프리지가 나비족을 ‘파란 원숭이들’이라 부르며 ‘야만족’으로 보고 자원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사고(서성식, 104-108)에서가 아니라 인류가 나비족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에서 깨지게 된다.

   인류는 전투기를 타고 공중에서 엄청난 수와 종류의 무기를 가지고 나비족을 공격하는 반면에 나비족은 활과 화살이라는 단순한 무기를 가지고 지상에서 대항한다. 여기서 인류를 보여줄 때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구도를 채택한 것은 나비족의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구도보다 훨씬 위압감을 느끼게 하며 이들이 전투에서 주도권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효과를 갖게 한다. 또한 선악 대립 구도에서 자신이 몰입하는 집단이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력하게 공격 당하는 서사 구조에 익숙하지 않으며, 승자로서의 지배적 쾌락을 선호하는 관객들은 전투 장면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살며시 인류로 전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비족은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고안하기 보다는 오히려 대답이 없는 대모신 아이와에게 간청하거나 그레이스 박사를 살리기 위한 일련의 의식을 벌이는데 이 역시 제3세계 식민지를 연상케 함으로써 관객은 다시 한 번 나비족과의 거리감을 형성한다.

   이는 <아바타>가 선주민을 열등하고 미개한 집단으로 상정해 자원을 착취하려는 식민지 지배자의 시선을 명백히 그러나 은밀하게 드러냄으로써 생태중심적인 판도라 세계의 매커니즘과 나비족의 생활상에 공감하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양 즉, 식민자의 입장에서 피식민자를 이상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보았던 관점을 그대로 차용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나비족에 몰입하게 되지만 극이 전개되면서 점차 관객은 자신이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복합적인 시각적 요소를 통해 확인한다. 물론 영화 전반에서 관객과 나비족은 같은 존재일 수 없지만 시공간과 입장이 다른 것-이것은 다양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과 행동 양식의 근본적 차이-이것은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특히 나비족이 의식을 치루는 과정은 원시부족의 전형을 보여주며 이들이 ‘미개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그러나 <아바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관객을 다시 영화 서사 구조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재전투 장면에서는 행성에 산재한 50개의 부족을 연합한 대항군을 조직하고 지형을 이용하는 등 전략을 펼치며 인류에 대항하며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기 때문이다. 또한 대답하지 않던 대모신 아이와 역시 동물들을 동원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보여줌으로서 ‘선’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다만 많은 살상을 벌임으로써 생태중심적인 가치를 지녔던 나비족의 본래 사상과는 달리하는 모순이 있지만 ‘악’으로 상정된 군대-기업 집단을 무찌르는 쾌감을 줌으로서 관객들이 다시 서사 구조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든다. 그리고 앞선 전투와 달리 재전투에서는 인류와 나비족을 공중과 지상의 구도가 아니라 공중 대 공중, 지상 대 지상의 동일한 공간에서 대결하게 만듦으로서 둘의 위치나 힘이 동일해졌다는 인상을 준다.

   결국 <아바타>는 근본적으로 나비족을 원시부족과 동일하게 묘사함으로써 ‘문화’적인 인류와 대비되는 ‘미개’ 이미지를 불러오며 이들의 권력 관계를 역전하는 방식으로 인류가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살상과 파괴라는 요소를 가지고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오리엔탈리즘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영화 전반에서 지지하는 대안적이며 생태중심적인 가치와는 한층 멀어지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이를 전면에 배치하여 관객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교묘히 오리엔탈리즘을 전시함으로써 흡인력 있는 영화로 보이게 한다.
 
 

3. 남성 영웅과 여성 조력자
 

   영웅적 여정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캠벨, 45) <아바타> 역시 영웅 신화를 기본으로 극을 전개하고 있으나 특이한 점은 두 명의 여성 조력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영웅 신화에서 여성을 영웅적 여정의 보상이나 목표로 삼는 것과 다르며 두 여성이 모두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젠더 역할의 재현을 균열시킨다. 그러나 남성 주인공이 비범한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각자의 유형에 따라 조력자로 그 역할이 전환된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다.
 

   1) 남성 영웅: 제이크
 

   주인공이자 남성 영웅으로 등장하는 제이크는 은퇴한 해병이자 장애인으로 과학자였던 죽은 형 토미 대신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는 아바타 프로그램을 통해 전신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력자들의 지도를 통해 판도라 세계에 빠르게 적응한다. 또한 대모신인 아이와6)에게 계시를 받은 자이다. 즉, 제이크는 현실(우주선 내 인간)에서는 소외되지만 가상(아바타인 나비족)에서 비범한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또한 제이크는 군대-기업 집단과 과학자 집단, 인류와 나비족 대립의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개자가 아니라 초기에 군대-기업 집단과 인류의 입장에서 과학자 집단의 지원을 받다가 차츰 나비족에 동화되어 입장을 옮겨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레이스 박사와 네이티리를 비롯한 여러 조력자들의 도움을 통해 영웅적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된다. 위기 상황에서 전설적 상징인 토르쿠 막토를 자신이 먼저 나서 선택하여 50개의 부족을 연합해 대항군을 소집하는 비범한 능력을 보인다. 영웅적 여정의 마지막에는 대모신 아이와의 힘을 통해 나비족으로 존재를 옮겨가면서 눈을 뜨는 장면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데 여기서 제이크는 새로운 가치를 담지한 인물로 재탄생한다.(서성식, 111-113)
 
6) 영웅 신화에서 세계는 어머니 우주로 대변되기 때문에 신이 ‘어머니’라는 여성형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캠벨, 374)


   2) 여성 조력자1(실패한 조력자): 그레이스 박사


   그레이스 박사는 판도라를 연구하는 식물학자로서 이 세계에 대해서 과학자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인류학자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기존 과학자 재현과 달리 자연을 무조건 이용, 착취하지 않으며 판도라 세계의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기업 집단과 대립하게 되며 제이크가 계시를 받아 영웅으로 성장하기 전까지 인류 중 가장 판도라 세계과 나비족에 정통한 인물이다.

   제이크와 동일하게 판도라의 외부인이지만 영웅으로 선택받지 못했으며 인간이 가진 신체적 상황의 한계(심각한 부상) 때문에 나비족으로의 존재적 전환을 맞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영웅적 여정에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초기에 제이크를 지휘하고 교육하는 관리자로서 등장하지만 그가 나비족과 접촉하고 계시를 받는 순간 조력자로 전환된다.
 

   3) 여성 조력자2(내조형 조력자): 네이티리
 
   네이티리는 나비족 족장 에이투칸과 정신적 지주 모아의 딸로서 차기 족장 츠테이와 혼인하여 함께 나비족을 이끌어갈 예정이었다. 또한 뛰어난 전사로서 묘사되며 영화 속에서 주로 여성 나비족의 대표로 등장한다.

   초기에 외부세력인 제이크에게 굉장히 공격적, 적대적이지만 계시 받은 자를 교육하라는 족장의 지시로 제이크의 나비족으로서의 정착을 돕는다. 여기서 네이티리는 판도라 세계 내 존재이자 나비족의 지배 계급으로 판도라 세계와 함게 살아가며 제이크에게 적절한 조언과 지도를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제이크와 사랑에 빠짐 즉, 그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조력자 역할로 전환된다. 제이크를 교육하던 스승에서 지시를 따르는 연인으로, 각자 에이칸(날짐승)을 타다가 투르크 막토를 탄 제이크 뒤에 앉아 사기를 돋우는 역할을 하는 등의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제이크와 두 조력자는 초기에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제이크와 그레이스 박사는 프로그램 참가자와 연구자이자 관리자의 관계로 만나며 현실 세계에서 제이크가 과학자가 아닌 전직 해병이었다는 것과 그 태도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제이크가 아바타를 다루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 박사의 인정과 지지를 받게 된다. 이윽고 제이크가 아이와의 계시를 받고 나비족에 합류하게 되자 박사는 홈트리 근처 기지로 가는 인물로 제이크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제이크는 박사의 지시를 받는 존재에서 아바타 프로그램의 핵심적 인물로 박사의 보조를 받는 자로 전환되며 박사 역시 관리자에서 보조자로 역할이 바뀐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판도라에 머물며 외부인으로서는 누구보다 깊이 판도라 세계의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교류를 추진한 인물은 박사이지만 오히려 대모신인 아이와의 선택을 받은 자는 제이크로서 ‘실패’한 조력자이다. 이는 그가 나비족으로의 존재적 전환을 이루지 못하고 인간이라는 한계에 봉착한다는 상황에서도 한 번 더 이러한 암시를 확인할 수 있다.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경우, 네이티리는 외부인인 제이크를 경계한다. 그러나 제이크를 교육하면서 친밀감을 형성하고 바르게 나비족의 생활을 습득해 가는 그를 뿌듯하게 지켜본다. 네이티리는 내부인이자 나비족 내 상류 계급이며 영화 전반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나비족 여성에 비해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 뛰어난 전사로 묘사된다. 그러나 서사 구조가 전개되고 제이크가 나비족으로 인정을 받자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의 선택을 기다린다. “너는 이제 네가 원하는 여성 역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며 다른 나비족 여성을 추천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선택 받기를 바란다. 초기의 네이티리가 제이크에게 먼저 지시하며 제안하는 관계였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네이티리는 박사와 마찬가지로 기존 젠더 재현과 다르게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인물로 묘사되었으나 남성 영웅과의 이성애적 관계에 진입하자 선택을 기다리며 순응하는 인물로 바뀐다. 이는 약혼자 츠테이와의 관계와 비교하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결국 <아바타>에서 네이티리는 독립적인 상황에서는 뛰어난 ‘개인’이지만 남성 영웅의 선택을 받으면 이에 순응하며 내조하는 ‘여성’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남성 영웅인 제이크는 현실에서 장애인으로 남성성을 잃은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아바타 프로그램을 통해 가상이자 새로운 세계에서 상실한 남성성을 회복한다. 이 과정에서 제이크가 이상적 남성상인 (퇴역한) 해병이었다는 것도 영향을 미치는데 전직 군인이었기 때문에 운동신경이 뛰어나며 변화된 상황에 적응이 빠른 상황이 쉽게 설명된다. 또한 인간 제이크는 자신의 장애를 매 일상에서 직면하지만 나비족으로서는 엄청난 운동성과 속도감을 보여줌으로서7) 남성 영웅으로의 전환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설정은 여성과 달리 소수자가 된 남성에게 다시 남성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줌으로써 가부장제 사회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남성들에게 감동을 주게 된다.

   이렇게 <아바타>에서 뛰어난 여성 조력자가 판도라 세계 내부인과 외부인으로 각각 등장한다는 것은 영웅 신화에서 여성의 존재성이 바뀌고 기존 젠더 재현 체계에 진동을 일으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원하는 여성상과 실제 여성의 모습 역시 바뀌었으며 영화에서 이를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 영웅과의 만남에서 영웅적 여정에 동참하는 것에 실패하거나 내조하는 역할로 바뀌는 등 조력자로 전환되는 것은 다시금 가부장제 사회 내에서 원하는 여성상의 내용과 실제 여성이 마주하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남성 영웅과 이성애적 관계가 아닌 사제 관계였던 그레이스 박사는 ‘남성’도 ‘영웅’도 아니며 더구나 인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더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혹은 그 발휘가 인정, 용납되는) 영역을 찾지 못하여 죽음으로서 서사 구조에서 사라진다. 한편 네이티리는 대안적 가치를 지닌 세계의 내부자이며 남성 영웅과 이성애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로서 남성 영웅의 정착을 돕고 그의 선택을 받은 이후에는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역할에서 수동적이며 보조하는 내조자로 남게 된다.

  즉, <아바타>에서는 남성성을 상실한 남성이 영웅적 여정을 통해 이를 재획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과 능력을 보여주며 구체적이고 살아있고 경험되는 역사적 주체로 재현되고, 조력자 여성과의 관계에서 그의 역사성을 보여준다. 반면에 조력자 여성은 뛰어난 능력과 역량을 가진 존재이지만 변화된 남성 영웅(과 그 역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성의 실천 양식이 달라지지만 동일한 (이성애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으로 재현됨으로써 탈역사성을 드러낸다.(김은실, 77; 재구성) 그러나 여기서 동일한 ‘여성’으로 일치시킬 수 없는 ‘개인’의 경우는 죽음으로써 그 맥락을 유지하게 된다.
 
7) 의솔의 조언


 
< 참고문헌 >
 
구미정(2011), “<아바타>에 나타난 생태적 가치”, 현상과 인식, 2011년 봄/여름호
김은실(2001), 『여성의 몸, 몸의 문화정치학』, 또 하나의 문화, pp. 43-81
김희정(2010), “영화 <아바타>의 이항 대립 구조”,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제27집
에드워드 사이드(1995), 『오리엔탈리즘』, 박홍규 역, 교보문고, pp. 11-58
서성식(2010),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진화 관점에서 본 영화 아바타, STEM Journal, 11(2)권
조셉 캠벨(2007),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이윤기 역, 민음사
조지 L. 모스(2004), 『남자의 이미지』, 이광조 역, 문예출판사
Stuart Hall(Edt.)(1997), 『Representation: Cultural Representation and Signifying Practices』, Sage, pp. 15-19, 257-264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