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사)성남여성의전화 아동/청소년 인권강사 양성교육 중 제가 진행한 '청소년 변화와 성 심리1: 생리, 몸, 이미지' 원고를 발췌한 것입니다.
사춘기, 청소년 혹은 10대라 불리는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남들에게 ‘보이는’ 나 즉, 타인의 시각을 인지하고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는데 이와 더불어 타인의 평가가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이 장에서는 10대의 변화하는 몸에 대해서 알아보고 기존의 통념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래서 왜 새롭게 10대의 몸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월경*(통)의 시작
자궁을 가진 여성의 경우, 10대(혹은 10대 이전)에 월경을 경험합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분위기에 따라 혹은 어떤 성교육을 받아왔느냐, 자신의 몸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에 따라 월경을 시작하는 여성이 이를 받아들이는 느낌과 감정 역시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성교육 혹은 생물학에서는 월경을 ‘임신(정자와 난자의 수정)의 실패에 따른 결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현재 여성의 삶에서 임신은 전 생애를 통틀어 1-2번(혹은 그 이상, 그러나 전체 월경 횟수에 비하면 1%에 못 미치는 아주 미미한 횟수임) 경험하는 매우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외를 기준으로 월경 전체를 설명한다면 여성은 계속해서 1달에 한 번, 제 주기마다 실패를 경험하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임신은 현재의 가족 구조에서 이성애 관계를 가정하고 여성의 역할을 재생산에만 한정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임신/출산 계획이 없는 여성이나 난임 여성에게는 차별적인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월경을 임신의 실패가 아니라 여성이 첫 월경부터 마지막 월경 시기까지 경험하는 인체의 순환 작용이라고 설명합니다.
여성은 초경을 주변에 알림으로써 ‘여성되기’ 과정에 진입합니다. '이제 여자가 되었구나!'라는 주위의 반응에 ‘어른이 되었다’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넌 이제 몸 조심을 해야 해’라는 단속이 시작되면서 이제부터 언제든 임신할 수 있는, 통제가 되지 않는 몸이라는 것에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월경이 시작됨과 동시에 겪게 되는 월경통은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계획대로 제어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인들이 월경을 새롭게 해석해 설명해 주고 이것은 통제를 벗어난 상태가 아니라 월경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됨(예를 들어, 월경 주기나 월경 혈의 색 변화를 통해 자신의 건강이나 심경을 진단할 수 있음) 혹은 몸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월경은 ‘생리’라는 단어로 지칭됩니다. 하지만 생리는 ‘생리작용’의 준말로 인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환작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보다 정확하게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신체 작용을 언급하기 위해 월경으로 바르게 부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2) 음경/고환의 발달
자궁을 가진 여성이 월경을 통해서 그 존재를 깨닫게 됨과 달리 남성 성기는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음경, 고환이 발달하거나 몽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남성들은 자신의 성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통과 의례처럼 시행되는 포경수술로 특정 형태의 남성 성기만이 아름답다, 혹은 옳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성 성기와 마찬가지로 남성 성기 역시 다양한 형태와 모양, 색깔을 가지고 있으며 반드시 이 수술이 필요한 것도 아님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샤워 등을 할 때 포피가 자연스럽게 벗겨져 오줌 찌꺼기를 제거할 수 있어 청결 유지가 가능하고 염증 발생이 적다면 포경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포피를 벗길 때 아픔을 느끼거나 잦은 염증으로 고생한다면 포경 수술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10대 남성들은 성교육 시간에 일반적인(평균적인) 남성 성기의 크기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사회 통념상 ‘큰 남성의 성기가 남성의 (성관계 시) 능력, 자질을 결정한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성 성기는 평소에는 이완 상태에 있다가 발기를 통해 크기가 커집니다. 또한 흥분 정도나 건강 상태에 따라 발기 정도가 다르다는 점, 성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파트너와의 교감이지 크기가 아니라는 점, 성기 중심의 성관계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성관계를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짚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는 성기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습니다. 성적인 요소로 자극을 받지 않아도 사춘기부터 남성 성기는 15분 정도의 간격으로 발기와 이완을 반복합니다. 또한 자고 일어났을 때, 추울 때, 특정한 냄새를 맡았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발기할 수 있으며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발기하게 됐을 때 애국가를 부르는 등의 발기 상태를 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대처할 수 있도록 조언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10대 남성은 일상적으로 성기를 만지고 관찰하는 행위 외에 몽정을 통해서 자신이 성적 존재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속옷이나 이불을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황할 수 있으나 몽정은 생산한 정자와 정액을 내보내는 생리적인 현상으로 몽정을 했을 때 휴지 등을 통해서 잘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오히려 몽정을 기다리고 이에 익숙해지는 시기가 올 수 있습니다.
3) 자위하기: 내 몸에 말 걸기
10대 이전에 자위를 시작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10대 시기에 자신의 몸 변화와 함께 자신의 성기에 관심을 보다 더 많이 가지게 됩니다. 10대 남성의 경우, 구성애 씨의 성교육을 통해 ‘자위하는(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또래집단과 함께 자위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하기도 하고 함께 자위하는 등 또래문화의 일부로써 자위가 받아 들여 집니다.
그러나 (10대) 여성의 경우, 처녀막이 손상된다거나 순결을 잃는다, 여성은 성욕이 없는 존재다 등의 사회 통념으로 인해 자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더라도 어떻게 자위를 해야 하는지 몰라 못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성기나 성감대를 자극하게 되고 이러한 쾌감을 탐구하게 된 여성들도 있습니다. 자위는 성기를 직접 자극하는 것 외에도 자신의 몸을 쓰다듬거나 만지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몸에 변화가 생기는지, 자신의 성감대는 어디인지를 탐구하면서 몸을 탐험하는 시간입니다. 자위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좋아하는 스킨십 부위나 성감대 등을 알게 되는 등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자위는 자신의 몸에 말을 거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자 일상 중 하나입니다. 어떤 성교육 교재에서는 ‘자위는 성관계할 파트너가 없을 때 성욕을 홀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만 자위와 함께하는 성관계가 의미와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자위는 가장 쉽고 편하게 자신의 몸을 탐색하고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파트너가 있건 없건 할 수 있는 행위이며 자신이나 나의 파트너가 자위를 한다고 해서 자신/상대방의 성적 매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즉, 자위를 통해서 자신의 성기와 성감대 등몸을 탐색할 수 있고 성기 관찰을 통해 더욱 자신의 몸과 감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이를 제어하는 것에 대해서 일러줄 필요가 있겠지요.
4) 맙소사, 저 ‘그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10대의 성욕에 대하여
자위하기 시작하거나 성관계를 하기 시작한, 혹은 자신의 몸 변화를 탐색하는 10대는 자신의 성욕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고 이를 더욱 자세히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아직 10대는 미숙한 존재이므로 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10대 역시 성적으로 활발한 존재이고 이미 성 행동을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나친 보호와 감시는 이들과의 소통을 막게 됩니다. 오히려 이들이 안전한 성 행동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개중에는 자위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10대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자위란 자신의 몸에 대화를 거는 과정이고 자신을 더욱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이에 너무 몰두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를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상 'Porn Sex vs Real Sex: The Differences Explained With Food' ⓒkbreativelab
5) 변성기
일반적으로 변성기는 사춘기 남성에게만 일어나는 몸 변화로 알려져 있지만 변성기는 성별에 상관없이 일어납니다. 그 이전까지는 어린아이 목소리 즉, 성별 분간이 어려운 목소리를 내다 이제는 자신의 성별에 맞는 발성과 언어 사용을 요청 받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하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바뀐 목소리 때문에 고민을 하는 10대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목소리는 얼마든 높낮이나 발성법 등으로 변화를 줄 수 있으며 가장 큰 예로는 성악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성악에서는 노력과 연습으로 목소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주요한 자질로 언급됩니다. 물론 성악 이외의 세계에서는 여성다운, 남성다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어떤 목소리를 ‘여성’, ‘남성’으로 구분할 것인지 역시 자연스럽지 않은 판단임을 인지하시고 특정한 방식으로 여자/남자 되는 것에 고민이 있는 10대를 잘 상담해 주세요.
6) 가슴의 발달
월경 이외에 10대 여성이 자신의 몸 변화를 느끼는 계기는 가슴의 발달입니다. 이미 10대 이전에 가슴에 몽우리가 지며 유선이 발달하고 이 당시 가슴에 느껴지는 고통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자신이 여성의 몸을 가졌음을 자각합니다. 또한 남성이 자신의 성기 크기를 고민한다면 여성은 얼마나 큰(적당한 크기의) 가슴을 가질 수 있는가에 골몰합니다.
모두의 생김새와 크기가 다르듯이 여성의 가슴도 그러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 주시고 몸은 여러 단계를 통해 변화를 겪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분수마사지라던가 가슴을 발달시키는 마사지를 통해서 가슴을 크게도 할 수 있으며 운동을 통해서 지방이 아닌 가슴 근육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임신, 출산으로 인해 가슴이 커지기도 하며 작아지기도 한다는 것, 즉 여성의 몸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러한 불안감은 사그러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성 역시 가슴이 발달하게 됩니다. ‘봉긋한 가슴’은 여성의 상징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이에 당황하는 10대 남성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처럼 가슴이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필요한 만큼의 지방이 쌓이는 일시적인 과정임을 알려줍니다. 혹은 비만 등으로 인해 여성형 유방으로 발달하는 경우가 있을 경우, 보호자와 의사의 상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게 합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어떤 몸이든 자신의 몸이므로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힘 기르기 방식이겠습니다.
7) 털의 등장: 좋은 털, 나쁜 털, 이상한 털
사춘기 이전의 몸은 아주 가늘고 연한 털이 나지만 몸이 성장함에 따라 팔, 다리 이외에도 성기, 겨드랑이, 코 등에 굵은 털이 나게 됩니다. 특히 음모는 물과 먼지, 더러운 것, 추위, 벌레 등으로부터 성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음모와 겨드랑이 털을 비롯한 체모는 사춘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땀샘으로 인해 페로몬을 나게 하는데 체모가 이를 품고 있어 타인이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합니다. 사람의 후각은 성적 본능, 성적 반응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잘 씻지 않고 속옷, 양말을 자주 갈아입지 않는다면 박테리아가 땀 속에서 자라 악취를 만든다는 것도 일러줍니다.
사람마다 음모의 색도 다양하지만 자신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으로 음모가 자랍니다. 또한 몸의 털은 한 번에 자라지 않고 팔과 다리, 손등, 겨드랑이, 어깨, 엉덩이, 배, 가슴 그리고 등 등 다양한 부위에 만 스무 살까지 점차 자라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털이, 얼마나 두껍게, 어떤 색으로 어디에 나는가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10대는 이러한 몸의 변화와 더불어 타인과의 관계를 발달, 확장하는 것에도 신경을 쓰게 되며 연애에도 관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연애’를 중요한 화두로 삼는 것도 원인일 수 있지만 부모 등의 양육 보호자 이외의 다른 관계를 만들어 가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10대 초반에는 연애에 대한 상상력이 없기 때문에 굉장히 이상적인 사람과의 연애를 꿈꾸기도 하며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애정표현을 낭만적인 것이라 인식하기도 합니다. 좋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 만화 등을 통해서 10대의 연애에 대한 상상력을 높이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또래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하고 상담해 주기도 하면서 연애하는 주체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무엇보다 연애라는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연애, 가능한 연애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나는 누구와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됩니다. 대부분은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가정하고 질문하지 않습니다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질문하는 10대가 있습니다. 혹자는 10대 시기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이성애의 연습이라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는 10대를 성적으로나 심적으로 미약한 존재로 바라보고 이성애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시각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누구이며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에 대해 관심이 높은, 자존감을 키우는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00애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체성은 항상 변화하며 지금 이성애자라고 느껴도 나중에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무성애자, 자기성애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횡단할 수 있음을 알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연애해야 성장할 수 있고 인생의 중요한 경험을 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연애든 삶에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느냐이며 이를 통해서 다른 관계로의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은 연애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히려 외로움이나 관심을 위해 다른 사람과 만나는 사람일 수록 그 관계에서 더욱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은, 가장 필요한 양육자가 되는 것, 이것이야 말로 관계 안에서 충만함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가기의 첫 걸음입니다.
・ 참고/인용 문헌
김백애라·정정희, 「준비된 부모를 위한 성교육 Q&A: 거침없는 아이, 난감한 어른」, 파주:문학동네, 2011.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글을 써서는 안 된다. 남을 위해서도 써야 한다. 머나먼 곳에 사는 알지 못하는 미래의 여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가 전혀 영웅이 아니었음을 알게 하자. 다만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열정적으로 믿고 추구했을 뿐이다. 우리는 때로 강했지만 때로는 매우 약했다.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이 에세이는 지혜 선생님의 젠더연구입문 수업 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늘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려 노력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신 지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에세이를 읽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깊은 위로와 지지를 해 준 친구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가족에 대한 페미니스트 분석에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사실 가족에 대한 텍스트만큼 재미없는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가족만큼 ‘자연’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변하지 않을 것 같고, 치열하게 싸우기 보다는 그 위력 앞에 무력해 지는 대상이 없더라구요. 그리고 가족에 대한 페미니스트 분석은 예리하지만 건조하고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의 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통해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사회 구조를 발견했을 때 받았던 놀라움과 충격이나 글에서 전해져 오는 감정으로 부단히 흔들렸던 경험, 혹은 미처 언어화하지 못했던 저의 경험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혹은 슬픔, 보다 복잡한 감정들을 떠올렸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아 부끄러운 글이지만 이 글이 여러분에게도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족 구조와 가족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아주 작지만큰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느 가족에 대한 에세이가 그렇듯, 가족의 이면을 들추면 마주치는 현실이 그렇듯, 이 에세이는 전혀 유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 나타난 슬픔과 외로움, 분노는 결코 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구조를 들여다보면 어느 가족에서나 일어났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보편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가족에 대한 환상이나 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 가족의 이면이나 새로운 친밀한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 이 제목은 파이어스톤이 그의 저서 『성의 변증법』 중 ‘결론’ 부분에서 언급한 ‘아이들에게 자신의 가족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한 것에서 따왔다. S. 파이어스톤, 김민예숙 역, 『성의변증법』, 풀빛, 1983.(S. Firestone, The Dialectic of Sex , Willian Morrow and Company, Inc.,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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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국 사람이야."
라며 사촌동생 A가 한국 음식 먹기를 거부했을 때 문득 나를 스쳐간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몇 년 전 고모부가 미국의 한 대학으로 박사 과정을 진학하게 되자 고모네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A가 세 살이던 해에 떠나서 올해, 그 친구가 여덟 살이 되는 해에 되돌아 왔으니 자신을 미국 사람이라 생각할 법도 했다. 따져보면 밥을 먹지 않는 것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 불과했다. 한 번은 핫도그를 먹으면서,
"이거 뭐야? 왜 붙어 있는 거야?"
"뭐? 깨? 이거 먹으면 건강해지라고 그랬겠지."
"한국 사람들 이상해."
깨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한국이 이상하다는 것, 그제서야 미국을 떠나온 것이 문제였다고 짐작하게 되었다. 고모와 고모부에게는 한국이 돌아가야 할 그리운 곳이고 아직 엄마 옆에서 떨어진 기억이 없는 4살짜리 동생에게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엄마 옆에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었겠지만 A는 많은 것을 미국에 두고 와야 했다. 누구와 만나는지, 어디에, 어떤 환경에 사는지, 어떤 말을 쓰는지, 무엇을 먹는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잘 때까지 계속 낯선 것들과 부대껴야 하는 상황. '하루아침에 바뀐 일상'이라는 것의 의미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단순하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2
아무도 없는 집 안, 창문 앞에 서서 커튼을 부여잡고 멍하니 보낸 시간.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떠올린 어떤 사람들. 누군지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고 어깨 아래로의 몸만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희미한 기억.
3
아빠, 아빠의 여자친구와 살다가 갑자기 부산에 있는 친가로 내려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
"혜영아!"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일어나지더니,
"이모?"
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내 이모인가? 내가 이모라고 부른 아줌마를 따라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갔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반겼고 좋아해 주었지만 너무 낯설었다. 어떤 곳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장소와 사람들. 몇 번을 다녀와서야 내가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낯설지만 익숙한 그 집의 냄새, 그 집에서 먹는 밥, 그 집의 분위기, 그 집의 사람들.
4
아직도 그날 밤을 잊을 수 없다. 할머니는 목욕탕에 가고 할아버지는 잠깐 자리를 비웠던 여섯 살의 어느 날 밤. 연락도 없이 찾아온 아빠는 자기를 따라가자고 했다. 불안했던 나는 할머니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며 싫다고 둘러댔지만 아빠는 계속 졸랐다. 이길 수 없었다. 곰인형 하나만을 안고 따라 나섰다. 그때까지도 아빠를 따라나서는 것이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전혀 알지 못했다. 차 뒷자석에 앉아 졸다 깨기를 수차례 반복하고서야 도착한 어느 깜깜한 건물로 들어갔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여자친구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와 아빠의 여자친구가 일하러 나간 동안 여섯 살짜리가 갈 수 있는 유치원은 많지 않았고 들어갔다 해도 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쫓겨나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보내다 차츰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동네에 나와서 아이들을 기다렸고 제일 늦게 집으로 들어갔다. 나를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잠들 때가 되어서야 아빠나 아빠의 여자친구가 집에 들어왔었다.
티비도 없었고 전화나 편지를 쓸 줄 몰랐던 그때의 나는 창문 앞에 서서 멍하니 있는 것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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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고 전화를 쓰는 방법을 알게 되자 친가에 연락할 수 있었다. 친할머니는 혹시나 내가 아빠의 여자친구한테 구박 받을까봐 책이나 옷, 편지와 함께 배를 갈라 동전을 잔뜩 넣은 강아지 인형을 몰래 넣어서 보내주었고 나는 그 돈을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심심할 때는 집 앞 공중전화에 가서 아빠 직장에 전화하기도 했고 친가에 전화해 간간히 내가 필요한 것들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외가에 대해서 물을 수 없었다. 왠지 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전화번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삐뚤빼뚤한 어린아이 글씨로,
받는 사람 부산에 있는 우리집인데요, 사하역 근처에 큰길에서 조금만 들어오면 미용실하고 피아노학원 사이에 있는 골목에 계단이 엄청 많거든요? 쭉 올라가면 집이 네 개가 있는데 오른쪽 두 번째 주황색 대문집에 꼭 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나 여기 잘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만 그것이었다. 내가 여기 있다, 정말 별거 아닌 말이었다. 나를 데려 오라는 말도 아니었다. 왜냐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물론 엉터리 주소를 적은 편지가 외가로 갈 리가 없었고 고민 끝에 나는 그 구구절절한 주소와 함께 우리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편지는 되돌아왔고 다시는 외가에 편지를 보내려 애쓰지 않았다. 그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외가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접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 기억하지 않게 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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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봄방학 때 깜짝 선물처럼 혼자서 친가에 갔다 오려고 했었다. 나는 서울과 부산이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친구들도 어디 놀러 가고 없는 봄방학 일주일을 혼자 보내기 싫었다. 무엇보다 내가 갑자기 친가에 나타나면 다들 엄청 똑똑하다고 칭찬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큰 도로를 다닐 때 어느 버스가 터미널로 가는지 유심히 잘 봐뒀다. 세뱃돈은 충분히 남아 있었고 봄방학 첫 날 나는 곰인형과 속옷 몇 장을 챙겨 좌석버스를 탔다. 정류장에는 잘 내렸지만 길 건너편 버스 터미널로 가는 지하도가 너무 복잡해 결국 그 근처를 서성였다. 어린 아이가 혼자 있는 것을 이상하게 본 아줌마가 나를 경찰서로 보냈다.
그날 밤, 아빠와 그 여자친구는 크게 싸웠고 며칠 후 친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때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나에게 네가 어디로 옮겨갈 것인지, 어째서 그렇게 됐는지, 거기가 왜 외가가 아닌지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다. 다만 부산에 내려간 이후로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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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기 전에도 나는 주로 외가에서 지냈다. 직장 생활에 바빴던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늘 내 옆에 있었다. 엄마가 죽고 나서도 나는 외가에 있었다. 아빠는 따로 지내고 한 번씩 들렀던 것 같다. 이모들은 내가 어릴 때 할머니가 안 보이면 여기저기를 다니며 할머니를 찾았다고 했다. 내 일상의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었고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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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세월을 보내고서야 그때 창문 앞에서 애써 기억해보려 했던 얼굴 없는 사람들이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내가 이모나 다른 외가 가족들을 다시 만났을 때 기억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는지, 내 안에 잔잔히 흐르는 외롭고 슬픈 감정들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어린 나에게 누가 가족이었는지의 것들을 우습게도 이제야 그 조각들을 맞춰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네 살 때 엄마를 잃었고 여섯 살 때는 가족과 헤어져야 했다. 그리고 다시 아홉 살때 또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내 삶을 시작해야 했다. 죽고 사는 것이 사람의 손을 떠나 있는 문제라면 가족을 선택할 권리, 그러니까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에 대한 결정권은 적어도, 내게, 주어졌어야 했다. 누구도 내게 누구와 살 것이냐 거나 어디서 살 것인지에 대해서 ‘당연히’ 묻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나의 ‘가족’이었고 그것은 내 삶을 이리 저리 바꿀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진 ‘어른’이라는 뜻이었다.